최근 tvN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시그널에 등장하는 여형사 차수현(김혜수 분). 그녀는 여자의 몸으로 거친 남자들로 가득한 세계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다. 날카로운 무기를 손에 쥔 거친 범죄자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데 0.1초의 망설임도 없다. 사건 속 피해자가 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끝내 한 팀을 이끄는 팀원으로 자리하게 된다.
모터스포츠 팀 알앤더스(R&Ders)의 감독 전난희. 아마추어 레이스 데뷔전에서 포디움에 오른 것은 물론 권위있는 모터스포츠 대회인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최초의 여성 우승자로 기록되어 있는 여성 레이서. 레이싱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당당히 그 실력을 인정받아 레이싱 팀 수장의 자리에 오른 그녀는 ‘상남자들의 스포츠’였던 모터스포츠계에서 꽤 화려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며, 상남자들로 가득한 세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다지고 있는 그녀들이라고 순탄하게 꽃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 있기 위해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두 배 이상의 노력을 하고 자신과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사회의 편견과 싸워 승리한 결과였기에 오늘이 더욱 돋보이는 게 아닐까?
“레이싱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보다 강하다고 생각해요. 그 열정만큼 꾸준히 노력하고 있어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습니다.” 2006년 레이싱의 매력에 푹 빠져 2007년 정식 데뷔를 한 전난희 선수는 데뷔전에서 운명처럼 포디움에 올랐다. 그렇게 레이서로 발목이 잡혀 버린 그녀는 본격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레이싱을 만나고 싶었고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사회 생활을 뒤로 하고 늦깎이 대학생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반대는 물론 주변의 걱정도 많았어요. 어린 나이가 아니었기에 더 걱정이 크셨을 것이라 생각해요. 곧 결혼할 나이의 딸이 위험한 레이싱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말씀을 드린 것이니까요.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주변 걱정에 한몫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예쁘고 귀하게 키운 딸이, 안정적으로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딸이 덜컥 대학에 다시 입학 해 레이서가 되겠다고 했으니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더 힘들었던 것은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온 몸으로 느낀 ‘편견으로 가득한 날카로운 시선들’이었다. “지금은 여성들의 모터포츠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여성 드라이버가 꽤 많아졌지만 제가 레이싱을 시작할 때만해도 여성드라이버가 흔하지 않았습니다. 그 만큼 남성 선수들의 견제가 상당했습니다. ‘모터스포츠는 남성들의 스포츠라’는 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자존심의 문제였으니까요. 많이 서럽고 힘들기도 했지만 그렇게 견제를 받을 때마다 실력으로 인정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습에 더욱 매진했습니다.”
편견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의 결과는 달콤했다. 2008년 DDGT GT-100 챔피언쉽 종합 우승을 비롯해 2010년 스피드페스티벌 4시간 내구레이스 포르테쿱 부문 1위, 2010 한국자동차공학회주최 대학생자작차대회가속상 1위, 대학생자작차대회특별부문 s&t 대우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실력을 차근차근 키워왔고 마침내 강원도 태백레이싱파크에서 펼쳐진 슈퍼레이스 넥센 N9000 클래스에서 28분32초356의 기록으로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여성 드라이버로서는 17년 만의 포디움 정상이자 권위있는 모터스포츠 대회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최초의 여성 우승자로 정상에 당당히 올라선 것이다.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멈출 수가 없었던 레이싱. 전난희 선수는 “10년 이상의 노력 끝에 가족에게도 완전히 ‘선수’로서 인정을 받았다”고 했다.
레이서로 확고히 자리잡은 그녀는 2015년 제2의 도전을 시도했다. 2015시즌 팀 챔피언스에서 알앤더스(R&Ders)로 팀 명이 바뀐 여성레이싱팀 감독이 된 것. “2015년은 정말 정신 없는 한 해 였습니다. 저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자 새로운 시작이었어요.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했기에 제가 할 수 있는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제 첫 걸음을 뗀 만큼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인감독으로서 오랜 경력을 가진 감독님들께 어깨 너머로 노하우도 조금씩 전수받고 있는 중입니다. 선수로 직접 서킷을 달리는 것도 행복하지만 감독으로 팀을 운영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과 보람이 됩니다.”
찬 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2월 강원도 인제스피디움 서킷. 전난희 선수는 이른 아침 트랙을 걸으며 2016 시즌의 계획을 들려주었다. “루키 선수들과 함께 하고 있어요. 정말 감회가 새롭습니다. 레이싱을 시작할 때가 많이 생각나요. 제가 생각하고 몸으로 느끼는 것을 누군가에게 전달해 주는 작업이 쉽지는 않지만 연습을 거듭하면서 루키 선수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뿌듯해요. 2016 시즌 투입된 루키선수들이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뒷받침해 줄 생각입니다. 좋은 환경에서, 많은 것들을, 짧은 시간 안에 흡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저의 몫이 아닐까 싶어요.”
레이서로 이제 막 첫 걸음을 시작한 두 명의 선수들은 전난희 감독과 트랙 워킹을 통해 그녀가 10년 간 온 몸으로 노력해 얻은 서킷 공략법을 전해 듣고 있었다. “F1선수들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도 수시로 변하는 트랙의 컨디션을 살피기 위해 경기 전 서킷을 점검하는 의미로 트랙 워킹을 합니다. 그만큼 트랙 워킹은 주행할 노면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루키선수들과 함께 트랙을 걸으며 제가 레이스를 하면서 느꼈던 소소한 노하우들 나눌 생각입니다.”
10년 동안 전난희 선수는 많은 것을 이루었다. 앞으로 10년, 감독으로 그녀는 얼마나 더 발전하게 될까?
“좋은 선수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팀의 역할이자 감독의 중요한 임무라 생각합니다. 올 시즌에는 좋은 선수를 영입해 좋은 환경에서 레이싱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레이싱은 승부의 세계입니다. 들러리가 되고 싶지않습니다. 제 스스로도 타이틀만 감독이 아닌 진정한 감독으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올 시즌 우리가 만나게 될 전난희의 모습이 서킷을 달리는 선수로서의 모습일지 아니면 루키 선수들에게 진정한 멘토로 자리잡은 감독의 모습일 지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녀가 마지막 랩을 돌고 체커기를 받는 순간, 메인 포스트 오피셜이 우승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체커기를 발령하는 순간 선수가 느끼는 짜릿함 이상의 감동을 선물해 줄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